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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새벽수영

새벽수영 6일차 feat 곰두리스포츠센터

by 배고픈험블 2017. 2. 7.

늦었다. 하고 눈을 퍼뜩 뜨니 5시 10분.

에이 뭐야 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기 싫었다. 은호가 부스럭 거리는 나를 끌어안았다. 내 왼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가지 말까....


3분 정도 고민하다 일어났다. 폰을 잡고 켰다. 5시34분. 핸드폰 불빛이 들어오자 방이 밝아졌다.


일어나자.


오늘은 정말 가기 싫은데 라는 생각을 꾹꾹 눌러 담으며 옷을 주섬주섬 챙긴다.

세탁소에서 옷 챙겨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꼬질꼬질한 옷들을 챙겨 입는다.

벨트는 안방에 있다. 애 깬다고 와이프가 뭐라고 할 텐데...

어쩔 수 없다.

끼이익...

마치 도둑이 된 마냥 발끝을 들고 들어가 보지만 여지없이 은샘이는 뒤척거린다.

이왕 깨 버린 거 어쩔 수 없다.

재빨리 방안을 둘러보며 벨트를 찾는다. 은겸이는 티비 밑으로 기어들어 갈 기세다. 물론 이불은 덮지 않고 발 끝에 걸려있다.

벨트는 마침 방문 바로 옆 화장대 위에 놓여 있다. 어제 은호가 가지고 논걸 순목이가 여기 뒀나 보다.

발로 툭툭 순목이를 건드린다. 눈도 못뜬 순목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손을 흔들어 준다. 다시 도둑은 방문을 열고 나간다.

프린트된 문양이 떨어지고 지퍼 손잡이가 떨어진 수영가방을 집어 든다. 오늘도 젖은 몸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될 일이다.

아직은 어둑어둑하다. 3월이 되면 이 시간이 좀 밝아올까.


차를 어디다 세워뒀더라


이젠 새벽에 일어나는 게 조금 익숙해진다. 예전보다 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5시 40분이 넘은 아주 이른 시간이지만 길거리에는 두어 명의 사람들이 발길을 서두른다. 출근길이겠지.

새벽수영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시각에도 일하러 나가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뭐 물론 오늘 편의점 앞에서 노닥거리던 양아치 같은 놈들도 있었지. 근데, 뭐 나는 안 그랬었나.


내가 잠든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지겨운 사실이 새삼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조금 늦게 집에서 나왔지만, 신호의 도움으로 오히려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수영장에 도착했다.

매일 같이 만나는 스펙트라는 오늘 마주치지 못했다. 다 같이 늦잠이라도 잔 걸까. 아니면 월수금만 나오는 분들인 걸까. 내일이면 알게 되겠지


토요일에 주차했던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고 수영장으로 들어선다. 아직까진 꽤 어둑어둑하다.

언제나처럼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뒤로하고 수영장 키를 받아든다.

새벽 수영 채수현이라는 글자가 안내판 위에 반짝인다.

수영장 입구 위에 걸려있는 수영장 내부를 보여주는 모니터는 아직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


뭐,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흠하고 들어서서 재빨리 옷가지들을 벗어 던지고 수영가방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간다.

비어있는 자리에 차고 들어가 물을 틀고 몸을 씻는다.

수영복이 차다. 밤새 찬 바람이 드는 마루에 놓여있어서 그렇나 보다. 내일은 조금 따신데 둬야겠다. 감기 걸릴라.

따뜻한 물로 수영복을 적신 후 입는다. 은색 수모와 흰색 수경을 머리에 차고 수영장에 들어선다.


잠시 온탕을 들어갈까 고민한다. 아 아니야 적극적인 자세, 적극적인 자세하며 7 Habit을 떠올린다. 퐁당. 어라 생각보다 물이 차갑지 않다.

어제는 물이 제법 찼었거든.


하나, 둘 준비운동을 한다. 목이 뻐근하다. 수영하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맨손 운동을 하며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을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땡겨도 본다. 뻣뻣해진 몸을 쭈우욱 늘린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발차기부터.

오늘은 자유영,배영,평영,접영 발차기 정도 했다.

배영에서 한 손으로 물 잡기 왔다 갔다 정도가 힘들었다. 자연스럽지 않아서인지 배영이 제일 숨 찬다.

어제 순목이 핸드폰으로 봤던 동기부여 영상이 떠올랐다. 지금 네 몸에 새겨 드는 고통이 너를 성공으로 이끌 거야. 그러니 그 고통을 즐기라는 말.

그 말을 떠올리며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숨을 내뱉는다. 수영하다 먹은 물 때문인지 가끔 트림도 나온다.


평영 발차기는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느낌이고 자유영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만 같다. 하지만 확실히 호흡은 날마다 나아진다.

매일 매일 무언가를 하는 건 분명 운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이쁘장한, 나이는 30대 중후반 정도 되는 아줌마가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이 꽤 재밌다.

일단, 맨날 늦는다.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 뭐 여기까진 특별할 거 없는 아줌마지.

조금 눈매가 매섭다는 거? 그리고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수영장 쌤을 꽤 좋아한다. 흘린다고 하나. 결혼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꽤 좋아하는 듯하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괜히 남자한테 징징거리고 엥기는거.

수영쌤도 싫지는 않은 눈치긴 한데.... 뭐 둘이 알아서 하겠지.


씻고 나온다. 수건 안 들고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젖은 몸을 바람에 말리며 발발 떨고 있으니 내 옷장 옆 칸의 아저씨가 말을 건다.


바로 출근하시나 봐요


늘 아들이랑 같이 오는 아저씨. 아들은 초급반에서 나 바로 뒤에 쫓아오는, 진도도 나랑 같이 빼는 고등학생? 잘 봐줘야 19살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이다. 아저씨는 이제 막 자유영을 배우시는 분이신데 화목토 오는 것 같다. 키도 작고 왜소하고 머리는 약간 벗겨졌다.

아저씨의 먼저 걸어준 말에 마음이 풀려 이런저런 말을 내뱉는다.


아, 집에 가면 시간이 너무 애매해서요. 밥 먹기도 그렇고, 애들 깨우기도 그렇고...


그렇게 다소간에 이야길 나누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으니 아저씨가 먼저 나가며 인사를 한다. 난 꽤 떨어져 있어서 인사를 해주진 못했는데 나한테 한 인사겠지. 다음번엔 받아 드려야겠다. 몸에 바디로션을 덕지덕지 바르고 옷을 껴입는다. 선풍기에 다 말린 머리를 다시 드라이기를 사용해 모양을 만들어 준다.


그러다 상급자반 쌤이 탈의실에 들어와 내 뒤에서 머리를 말리던 꼬마 하나에게


야 저기 밖에 안내실 누나한테 커피랑 종이컵 좀 받아와라


뭐야, 지가 들고 오면 되지 왜 애를 시켜. 꼬마 눈치도 보니 내가 왜 하는 얼굴이지만 거절할 수 없다. 상급자반 쌤 덩치도 제법 큰 편이거든.

뽀르르 뛰어나가더니 이내 종이컵 하나와 커피 하나를 건네준다. 이내 사용하던 드라이기가 꺼진다. 이건 3분인가, 그것보단 좀 긴거 같은데 하며 드라이기를 제자리에 걸어둔다.


옷장 열쇠를 챙기고 바닥에 내려놓은 수영가방과 패딩을 챙긴다.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가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방커피 하나씩 들고 하하호호 떠들고 있다.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안내실 누나한테 옷장 키를 건넨다.


안녕히 계세요


안내실 맞은편에 있는 수영복매장은 불이 꺼져있다.

밖으로 나온다. 유행가를 뒤로 한 채 스펙이한테 걸어간다. 이제 꽤 밝아졌다.


힘들다. 힘들어


혼자 중얼거린다. 몸이 노곤하다.

하지만 상쾌하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이제 일하러 가자.


제법 어스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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