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9 (9와 숫자들) _ 탐나는 재능
-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가 만든 작은 세상으로
졸린 곰도 길을 잃은 다람쥐도
어림없죠 그대밖에는
들어와요 들어와요
창이 없어도 나는 빛을 볼 수 있어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온기는 그대 것이니까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들어봐요 귀 기울여 봐요
내가 지은 그대 위한 노래
밤 짐승도 약이 오른 아기 새도
소용없죠 그대 앞에선
내일은 더 찬 바람이 분대요
철새들은 어제 출발했어요
극명하던 푸르름과 시들음의 차이도
하얀 눈 속에선 의미를 잃어가네요
들어와요 들어와요
초라하지만 여기만은 안전해요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향기는 그대 향해 있으니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모든 두려움 다 떨쳐버리고
<방공호>라는 곡명은 다소 투박하지만, 어떤 위협도 막아줄 수 있는 튼튼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좋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영문명은 '동면'이라는 뜻의 <Hibernation>이다. 추운 겨울, 동물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긴 잠을 청하는 것처럼, 따뜻하고 안전한 우리만의 공간으로 들어와주기를 간절히 청하는 곡이다. 앞서 발표된 노래들과 달리 피아노 한대로 구성된 소박한 편곡이지만 피아노만의 따뜻하고 풍성한 선율로 노랫말과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9와 숫자들 '제5의 멤버'로 함께 활동 중인 작곡가 겸 키보디스트 김진아가 편곡을 맡았다.
보도자료가 좀 오글거리기는 한데, 뭐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사실 9와숫자들이 내는 곡은 매번 큰 기대를 하고 듣는 편인데 그 이유는 가사에 있다.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가 만든 작은 세상으로
졸린 곰도 길을 잃은 다람쥐도
어림없죠 그대밖에는
뭐 거의 첫소절에서 작살난다고 봐야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가사들은 직접 들어보고 느껴보시라. 작사작곡을 맡은 송재경을 포함한 9와숫자들은 서울대 역사학과 출신 (9-송재경)에 붕가붕가레코드를 거쳐 튠테이블 레코드라는 독립 레이블을 세웠다. 짱이지.홍대 인디씬에서도 잔뼈가 굵은 편이며 한국의 그래미로 불리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제8회 최우수 모던 록 음반, 제12회 최우수 모던 록 노래 상을 수상하였다.
전체적으로 이 그룹의 주 패턴이 차분하면서 서정적인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모던 록풍의 싱글들인데 이 곡 또한 그렇다. 아주 멜로딕하다고 할 순 없지만 충분히 팝적인 요소가 있고 다시 말하지만 가사가 죽인다. 이 표현 외에 다른 말을 못찾겠다. 개인적으로 멜로디 덕후 (그래서 노리플라이와 메이트에 환장한다)라서 이런 풍의 노래를 좀 듣기 힘들어 하는 편인데 이 곡같은 경우는 가사에서 완전히 아웃라이어 수준이라... 임요환이 최연성이랑 붙었는데 물량이고 나발이고 교전시 컨트롤로 개박살 내는걸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길게 늘여 썻지만 한마디로 졸라 좋다는 뜻이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한 번, 이들의 주요 곡들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연말이다. 다들 아프지 말고 외롭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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